,연정 먹빛여행 앨범

희망의 붓

연정 박영애 2015. 11. 25. 17:52
희망의 붓, 박경복 씨
2015년 11월 23일(월) 09:36 [경산신문]
 

ⓒ 경산신문
일생에 한번은 꼭 명심보감을 써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도리,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 인격수양을 위한 수양서이자 교훈서인 이 명심보감의 핵심 1248자를 한 팔을 가누지 못하는 50대 중반의 장애인이 써냈다.

지난 10월 26일 경산시민회 전시실. 9번째로 열린 사단법인 한국서가협회 경산시지부 전시회에 모처럼 대작이 걸렸다. 가로 70센티, 세로 200센티 화선지 13장에 명심보감 25편에서 가려 뽑은 1248자를 해서체로 반듯이 쓴 이 작품은 올해로 55세가 된 박경복(사진) 씨가 하루 7시간 이상씩 보름 동안 써내려간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박씨는 대구 대연동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3살 때 뇌성마비로 오른쪽 얼굴과 팔, 다리를 못 쓰게 됐다. 다행이 얼굴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팔 다리는 끝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박씨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신문가판. 예닐곱 살에 시작해 8년 전 하양으로 들어올 때까지 무려 33년을 신문을 팔아 먹고살았다. 33년 간 신문 가판을 하면서 수성구에서 월배까지 대구 전역을 안 다닌 데가 없다. 특히 북구 동구 쪽 서점과 슈퍼, 마트, 터미널은 박씨의 신문이 꽂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판대에는 스포츠신문이 잘 나갔다. 특히 유명 연예인 스캔들이 터지는 날이나 삼성라이온스가 이기는 날은 불티나게 팔렸다. 반면에 야구경기가 없거나 삼성이 지는 날은 가판도 뚝 떨어졌다.

신문가판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던 박씨에게 무료신문과 인터넷신문의 등장은 치명적이었다. 할 수 없이 형과 누나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하양으로 이사왔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그렇듯이 50대가 지나면 급격히 기력이 떨어지는 특성 때문에 하양에 들어와서부터는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일을 잃은 공허함 때문에 심적으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신문지에 무언가를 쓰기 좋아했던 박씨는 붓글씨를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문화회관 서예반에 등록했다. 매주 화, 목요일 2시간씩 붓글씨를 익히며 박씨는 일생의 스승을 만났다.

4년간 박영애 선생의 지도로 경북도서예전람회 입선 3회, 대한민국포은서예휘호대회 특선, 대한민국향토미술대전 특선 등 서력을 쌓아가던 박씨에게 스승은 이번 전시회를 앞두고 대작을 제안했다. 바로 명감보감 전문이었다. 비록 25편 전문을 다 쓰지는 못했지만 보름간 매일 7~8시간씩 골방에서 먹을 갈고 붓을 가다듬은 끝에 완성했다. 이런 박씨의 열정에 감복한 스승은 표구비를 선물했다.

44살 늦게 결혼한 박씨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두 딸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을 위해 나이가 들어도 붓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은 아버지의 이 불굴의 의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획이 반듯하고 각이 잡힌 느낌이 나는 구양순체를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박씨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픈 몸과 마음인지도 모른다.
최승호 기자  gsinews@gs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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