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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주인 부친 별세....

연정 박영애 2012. 12. 9. 17:56

별세 일시 및 장례식장

2012.11. 30. 07;30(음, 2012,10,17일)

대구의료원 장례식장 VIP201호

발인 오전 8시

장지:군위 우보 선영

 

 

추모식
(약력보고-추모사-헌화)

1. 약력보고
 고인 박*우아버지는 박혁거세 63세손, 함양박씨 세손으로 1924년 4월 14일(음력 3월 11일) 아버지 박춘환,(할아버지) 어머니 문화유씨(할머니) 4남 2여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1946년 어머님 영천 이씨 현귀씨와 결혼하여 5남 2녀(7남매)를 두었습니다.

결혼 후 분가 당시 재산이라고는 겉보리 1말로 시작하여 논, 밭을 일구었으며 겨울철 농한기에는 양말 짜는 기계를 구입하여 가계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고 마늘농사와 지황・황기・도라지 등 약용・특용작물을 심어 가게와 자식들 공부에 크게 보탬이 되었으며 특히 한약재로 약방에 감초처럼 쓰이는 숙지황을 제조하는 “협동 제약사”를 1970년 신현확 보건사회부 장관 당시 어렵게 허가를 받아 마을사람 몇분과 공동으로 설립하여 전국 약전시장에 공급하여 동네 농가들의 수입증대에도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그 노하우를 둘째아들 *錫, 손자 *基에게도 물려주어 대구 공단에 진출하여 오늘날까지 대구, 부산, 서울 등 전국 주요 한의원과 한약방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또한 교육에 남다른 열의를 가지고 자식들이 대구에서 학업을 할 수 있도록 1970년 대구 원대동에 현대식 한옥을 한 채 장만하여 자식들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큰아들 *錫은 명문 대구상고를 졸업하여 일평생 은행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도 중소기업 이사로 재직 중입니다.  셋째 *錫은 대구 경일대학교를 나와 대구에서 (주)종보전기 대표이사를 맡아 번창하게 사업을 하고 있으며 넷째 *호는 해외 유학을 다녀와 농학박사를 취득한 후 현재 국립 한국 농수산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에 한국농업발전을 위해 연구는 물론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다섯째 *석은 부산대 행정대학원석사를 졸업하여 외환, 하나은행에서 근무를 하였고 현재는 중소기업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큰딸 영애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명예롭게 명퇴한 남편 김수만을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일구어 왔으며 특히 사단법인 한국서가협회 경산지부와 계명대학교 예술대학원 서예과 석사학위를 마치고 왕성한 서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막내 *순은 신일 전문대 유아교육학과를 졸업 유치원교사로 재직 중에 사업을 하는 남편 오*찬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군위에 소재한 삼성주유소 사업을 번창하게 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사랑하는 아내, 자식, 손주를 합하여 40여 명의 다복한 가정을 두었습니다.
고인은 밥상머리 교육에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 하시면서 人 앞에 겸손하라는 말씀을 노래처럼 하셨습니다.

2. 추모사
 고인은 평소 ‘일을 매우 영글게 한다’라는 말을  주변 사람으로부터 많이 들어왔습니다. 동네에서 몇몇 사람들은 교육기회만 조금 더 가질 수 있었다면 시골을 벗어나 사회에서 충분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선동의 기상댁이라 하면 소재지 왠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정도로 발이 넓었으며 몇 해 전까지만 하여도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먼 거리에 있는 우보면 노인정에도 매일 출입하여 지역사회 노인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습니다. 또한 함양박씨 문중일도 박은석 위원장, 박재길 총무와 오랜 기간 맡아 하시면서 1981년 11월에는 ‘함양박씨 정헌공파세보’상・하 2권의 족보책이 발행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을 하였으며 특히 마을에서 큰 일이 있으면 늘 솔선수범하여 왔습니다. 이런 가운데에도 여행을 좋아하셨고 약주와 육류를 특히 좋아하시어 늘 집에는 자식들이 사 드린 술병이 박스채로 쌓여 있기도 하였습니다. 건강도 잘 관리하시어 지난 해 까지 별 탈 없이 40여 명의 사랑하는 아내, 자식, 손주들도 누구하나 그르치지 않고 큰 근심 걱정없이 사셨습니다만 금년 들어 89세라는 고령으로 인한 치매증상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으며 요양 중 폐렴이 발생하여 대구의료원으로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왔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하시고 89세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 손주를 남겨 두시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 2012년 11월 30일 별세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저는 이번 일을 당하고 보니 많은 조문객과 엄청난 근조화환 그리고 우리은행 대구은행 하나은행 CJ  한국전기협회등 많은 접대 물품을 보내주셔서 요긴하게 잘 썼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조문객을 뵙고서 우리에게 엄하게 키워주신 은혜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남은 우리 형제 자매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든 서로서로 나누어 돕고 동기간에 우애 있게 지내면서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잘살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이젠 춥지도 않을 것입니다. 덥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맘 편히 계십시오. 아버지 사랑합니다. 부디 생전의 아버지처럼 일 많이 안 하셔도 되는 편안한 하늘나라에 가셔서 편히 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버지! 다시 한번 엎드려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12년 12월 2일

 

 

젊지도 늙지도 않는 우리 형제 자매들...

명복을 비는 화환!! 국화향기가 진동하는 가운데..

아부지 좋은 곳으로 가세요~()()()

삼가 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178개란 근조 화환에 아니 놀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 된 도리로 정말 감사합니다.

옛적부터 마련한 묏자리라 아버지께서 편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